[번역] 마르크스주의-페미니즘의 13개 테제

* 마르크스주의와 페미니즘을 결합하려는 많은 시도가 있었고, 여전히 페미니즘이라는 말을 거부하는 마르크스주의자들도 있지만, 페미니즘의 문제의식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려는 마르크스주의자들도 존재합니다. 2015년 마르크스주의와 페미니즘의 새로운 결합을 위해 조직된 인터내셔널 마르크스주의-페미니즘 컨퍼런스는 마르크스주의와 페미니즘 모두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제기합니다. 이 논의의 결과로 2018년 회의 소집자 가운데 한 사람인 독일의 사회학자이자 철학자 프리카 하우크가 대표로 집필한 13개의 테제를 들락날락 번역모임에서 번역해보았습니다. (책방 들락날락 번역모임)

* 원문 : https://marxfemconference.net/2018/10/29/frigga-haug-thirteen-theses-of-marxism-feminism/#_ftn1

“프리카 하우크가 마르크스주의-페미니즘의 사유와 행동의 토대를 놓기 위해 기초한 이 테제들은 마르크스주의-페미니즘 컨퍼런스(Marx-Fem-Conferences) 과정에서 조직된 집단적인 논의의 결과물이다. 프리카 하우크의 서문과 함께 소개한다.”

프리카 하우크

자본주의의 깊은 위기 앞에서 모든 안전장치들은 무력해지고 매번 더 강해진 위기가 올 뿐이다. 위기는 일상생활에 점점 더 많은 영향을 미치고, 홀로 남겨져 두 배의 부담을 지고 사는 여성들의 수는 점점 늘어나 그들의 생활환경은 미래를 더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다. 나는 이런 상황을 고찰하기 위해 1970년대 운동 때부터 회의, 여행, 교환교수를 통해 알고 있던 페미니스트이자 마르크스주의자인 사람들에게 요청을 보냈다. 우리가 보기에, 자본주의와 그것이 초래한 위기가 글로벌해진 것처럼, 이제 마르크스주의-페미니즘 세력들도 전 지구적인 차원에서 모여야 할 때였다. 한 마디로 마르크스주의-페미니즘 인터내셔널이 필요한 때였다.

불과 일주일 내로 세계 전역에서 40명의 여성들이 내 첫 번째 회람 서신에 응답했다. 회의에는 34개의 발제문이 제출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이 인터내셔널을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미래에도 굳건하게 이어나가기 위해, 나는 34개의 발제에서 합의된 내용을 요약하여 12개의 테제를 써서 마지막 총회에 제출했다. 여기서 나는 미리 발제의 내용을 알 수 있는 주최자의 특권을 이용할 수 있었다. 많은 여성들이 참여한 베를린 총회의 토론 과정을 통해 테제들에 대한 수정, 개선, 확대가 요청되었다. 나는 그것들을 적어서 요약하고, 원래의 테제들에 그 내용을 포함시켜 수정하였다. 이 회의가 계속 이어져야 한다는 점에 대해 이의는 전혀 없었다. 다음 회의는 2016년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열렸고, 또 다시 30개국에서 500명 넘는 여성들이 참여했다. 테제들은 또 다시 토론에 붙여져 더욱 세밀하게 개선되었다.

이 테제들을 우리가 이미 달성해 온 것을 위한 재료로, 토대로, 우리가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들로 “선언”하기 위한 목소리로 생각하자. 이 테제들은 큰 포럼을 위해 언제든지 갖고 갈 수 있는, 각기 다른 무리들 사이에서도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는 여행 가방이다. (재생산 기술, 토착 문화의 포용, 장애인 차별에 관해 논의한) 빈 회의에서 제기된 많은 제안들도 앞으로 여기에 통합되어져야 할 것이다. 이 테제들은 우리가 지금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려고 하는지에 대한 작업 도구이자 보험이며, 그 경로와 목표는 모두 공동의 논의에 열려 있고, 따라서 변화할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페미니즘(Marxism-Feminism)의 13개 테제

1.

마르크스주의페미니즘은 동전의 양면이다. 하지만 여기에 이 동전 자체가 변해야 한다는 점이 추가되어야만 한다. 페미니스트 마르크스주의는 마르크스의 유산을 확고히 계승한다. 따라서 그것은 노동운동의 원동력으로서 임금노동 형태의 노동 분석이 여전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전히 남아 있는 여성의 활동을 똑같이 분석의 중심에 놓으려고 시도하면서도, 마르크주의-페미니즘은 가사 활동과 비가사 활동을 완전히 하나로 생각하거나, 반대로 완전히 분리된 것으로 생각하는 무능력한 시도로부터 이 문제를 이동시켜, 페미니즘의 문제들을 위해 생산관계의 개념을 차용하여 변형시키는 근본적인 과제로 나아간다.

2.

그로부터 생명의 생산과 생활수단의 생산이라는 두 가지 생산이 전제된다. 이 둘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개개의 실천 형태들과 더불어 어떻게 이 둘이 상호작용하는지도 검토가 가능하다. 이는 방대한 탐구의 장을 열어주는 바, 여기서 우리는 특수한 지배 양식들을 연구할 수도 있고, 역사·문화적으로 특수한 다양한 방식으로 변화의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3.

젠더관계는 곧 생산관계이며, 생산에 부가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명백하다. 모든 실천, 개념, 가치, 권위, 제도, 언어, 문화 등은 젠더관계로 코드화된다. 이런 전제는 페미니스트 마르크스주의 연구를 그것이 필연적인 만큼 풍성하게 만든다. 전지구적 관계가 낳은 동시대성과 유대감, 그리고 이와 동시에 역사적으로 구체적인 여성 억압의 이질성은 세계의 활동가들에게 지식과 경험을 하나로 모으기를 요구한다.

4.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 사회와 지배를 정당화하는 이 사회의 분과 학제에 유용하지 않다. 마르크스주의페미니즘은 인간은 자기 (스스로) 자신의 역사를 만든다 ― 그것이 가로 막힐 경우, 자신의 힘을 키우려고 한다 ― 고 전제하기 때문에 수직적인 위계 구조에 적합하지 않다. 이는 기억 작업 같은 연구를 이용할 수 있게 하고, 집단 속의 자아를 역사비판적으로 다룰 수 있게 해서, 하나의 생산력으로 기능하는 자아에 대한 비판도 가능하게 만든다.

5.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은 행위를 하려면 지배적인 관계들에 참여할 수밖에 없다. 이는 자본주의 가부장제를 변화시키려는 욕망을 마비시키거나 구속하는 지배의 매듭들을 구체적으로 연구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페미니스트는 여기서 권력에 참여해서 얻는 특권이 적다는 이점을 갖고 있다. 따라서 잃을 것이 적은 만큼, 아래로부터 세계를 보는 경험을 더 많이 가진다.

6.

자본주의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은 이런 지배/종속 관계에서 발생하는 피해를 입고 있다. 그런 만큼 어느 누구도 해방된 사회에 살고 있지 않다. 우리 현재에는 폭력과 지배가 역사적으로 침적된 형태로 존재하고, 따라서 이는 하나의 지속적인 발전 경로나 하나의 중심 모순으로 환원될 수 없다. (여성에 대한) 폭력, 야수성, 전쟁 태세 등 야만적 형태들은 오래된 관계들에서 유래한 역사적으로 이질적인 부분들로 이루어진 혐오로 파악되어야 한다.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이 폭력적인 관계들을 해방을 위한 그들의 투쟁, 그리고 남성-인간의 미성숙함(Unterentwicklung)에 맞서 그것을 뛰어넘는 주체의 지위를 달성하는 투쟁의 근본적인 이론적·실천적인 부분으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폭력은 전통적이고 시대에 뒤떨어진 관계들 뿐 아니라, 지금 생산되고 있는 관계들의 표현이기도 하다. 바로 그 때문에 본질주의에서 벗어난 구체적인 비판과 분석의 이해가 필요한 것이다. 폭력의 가장 야만적인 형태는 우리가 이미 극복했다고 생각했던 관계들로부터 혐오로 돌아오고 있으며, 이는 동시에 현재의 관계들의 산물이기도 한다.

7.

마르크스주의페미니즘은 역사의 주체이자 변화의 주체로서 노동운동이 가장 중요하다는 입장을 취한다. 마르크스주의로 페미니즘을 끌어들이고, 그것을 통해 페미니즘 뿐 아니라 마르크스주의를 변화시키는 것은 오로지 노동운동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관점을 불가결하게 요구한다. 마르크스주의란 마르크스의 경치경제학 비판 + 노동운동이라는 관점은 탁월한 강점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이는 또한 그 한계를 드러낸다. 지금까지 노동계급의 운명도 계급투쟁의 역사적 지평을 뛰어넘는 질문들을 인식하고 더 발전시키는 데 무능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는 새로운 페미니즘이 던진 질문들뿐만 아니라 생태주의가 던진 질문들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에 대한 작업을 계속해야 한다. 다양한 운동들의 자원들 뿐 아니라 마르크스의 문화적 유산에서 여전히 사용되지 않고 있는 자원들은 현재로 계속적인 작업을 요구한다. 이는 모든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의 과제로서, 거의 모든 기고문에서 합의된 것이다.

8.

인종, 계급, 성별/젠더 (교차성)에 대한 논쟁은 더 계속되어야 한다. 자본주의에 장악된 모든 사회에서 계급과 성의 관계는 자세히 연구되어야 한다. “인종 문제”로 나타나는 것은 각각의 사회 및 문화마다 구체적으로 답을 찾아야 하며, 다른 두 종류의 억압과 관련해서 해명해야 한다. 비선형적 사고가 필요하다.

9.

급속하게 세계화된 경제의 연속적인 위기들에서 명백히 드러난 포디즘의 위기는 사람들을 점점 더 불안정한 조건으로 몰아넣는다. 포디즘의 위기 이래 벌어지고 있는 격변 속에서 여성은 다른 소외된 실천 및 집단과 마찬가지로 패배한 자들에 속한다.

10.

세계화된 경제 속에서 서구 복지국가가 해체된 결과로 삶에 대한 돌봄이 무급 가사노동이나 저임금 노동에 종사하는 여성들에게 맡겨지고 있다. 이는 글로벌 돌봄 사슬에서 세계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현상이다. 우리는 이를 자본주의 사회의 필연적인 결과로 나타나는 “돌봄 위기”로 생각할 있다. 자본주의 사회는 경제적 중심이 서비스로 이동하면서 이윤을 쥐어짜는 단계로 돌입했으며, 불평등한 가치 수준들을 창출하여 위기에 대응하는 더욱 야만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다.

11.

우리 모두에게 공통점은 삶을 우리 투쟁의 중심으로, 따라서 집단적으로 시간을 자기 결정하는 투쟁으로 옮기는 것이다. 우리는 삶을 둘러싼 위기를 위계적으로 조직된 영역들에서 불평등한 시간 논리의 결과로 분석하자는 제안을 따를 수도 있다. 하나의 정치로서 하우크는 인간은 네 가지 활동을 겸해야 한다는 관점(four-in-one perspective)*을 제안한다. 이는 시간의 배치를 정치적 의사결정의 중심이 되게 하는데, 따라서 각 영역들을 각자에게 전문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일반화를 통해 위계적 질서에서 해방시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모든 영역에 활발히 참여할 때에만, 해방된 사회가 가능할 것이다.

* 프리카 하우크는 인간의 활동이 생산 활동, 재생산/돌봄 활동, 문화/자기계발 활동, 정치 활동으로 나눠진다고 주장한다. 하우크는 인간은 이 활동들을 모두 고르게 수행해야 하지만, 현실에서 어떤 집단이 어떤 활동에서 소외되고 있는지 분석해 볼 것을 제안한다. ― 옮긴이

12.

우리의 투쟁은 지배에 맞서며 급진적으로 민주적이다. 이는 또 아래로부터의 정치도 요구한다. 우리의 저항은 문화적으로 시간적으로 서로 다르게 위치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이 천대받고 예속되고 버림받으며 경멸받는 존재로 있는 모든 관계들을 전복”*시키기 위해 마르크스와 결합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 대회를 조직하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의 협력과 갈등의 방식들을 고찰하는 것은 우리의 저항을 지속적인 마르크스주의-페미니즘 운동의 발전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수단이다.

* “헤겔 법철학의 비판을 위하며”, 박종철 출판사, 칼 맑스·프리드히리 엥겔스 저작선집 1권, p.9

13.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는 더 이상 노동운동이 분업으로 그들에게 부여한 위치, 즉 남성들이 전쟁을 하는 동안 여성들은 평화를 구현하고 그것을 지킬 책임을 져야하는 위치에 머무르지 않는다. 우리는 이런 정치로 한정되는 것을 거부하며, 모든 책임을 지길 원한다. 위기와 전쟁으로 특징지어지는 현재의 전지구화 상황에서, 우리는 페미니스트의 힘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책임을 지며 강력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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