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기후위기와 코로나19는 분리할 수 없다.

* 십 수 년 전만해도 에너지 자본과 보수 단체의 지원을 받는 지구온난화 허구설이 꽤 인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런 주장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기후위기의 심각성이 실제로 체감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기후위기가 실제적인 위협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최근 우리의 삶에 가장 큰 위협이 되고 있는 코로나19 같은 새로운 전염병의 잦은 등장 역시 환경 파괴와 관계가 있는 것이 분명할 것입니다. 기후위기와 코로나19의 관련성을 다룬 미국 사회주의 잡지 <자코뱅>의 5월 31일자 기사를 번역해서 소개합니다. (번역 : 책방 들락날락 번역모임)

* 원문 : https://www.jacobinmag.com/2020/05/climate-change-crisis-covid-coronavirus-environment

“TV 논객들은 우한 “수산시장”을 판데믹의 원인으로 지적하기를 좋아하지만, 코로나19는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환경파괴라는 훨씬 큰 현상의 결과이다. 팬데믹과 환경파괴라는 두 적과 싸우는 건 식량 생산과 토지 이용의 정치를 우리 사회주의 기획의 중심에 두는 것을 의미한다.”

taylor_12수나우라 테일러(Sunaura Taylor), “치킨 트럭(Chicken Truck),” 유화, 2008.

 

드루 펜데그라스/ 트로이 베테세

 

18세기에 최초로 백신을 발명한 에드워드 제너는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것과 유사한 위기, 즉 질병으로 무너져가는 세계에 직면했다. 그가 연구한 것은 코로나바이러스가 아니라 천연두 바이러스였다. 천연두 바이러스는 구세계(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에서 20%에서 60%의 사망률을 보였고, 신대륙의 사망률은 그보다 훨씬 높았다.

빈틈없는 관찰자이자 숙련된 조류학자였던 제너는 전염병이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는 불가피한 위기라기보다는 문명과 자연의 교착이 증가하면서 발생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사스코로나바이러스2형( SARS-CoV-2)*와 같은 병원체들을 “인수공통전염병”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것들이 동물의 질병에서 기원하기 때문이다. 제너는 1798년에 발표한 백신 접종 실험에 관한 논문을 “사람이 나고 자란 나라에서 벗어나는 것이 많은 질병의 원인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인간은 본래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만나기 어려운 많은 수의 동물들과 가까워졌다.”

(*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를 일으키는 바이러스의 이름이다. 풀네임은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코로나바이러스 2형(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 coronavirus 2)’이라고 한다. ― 옮긴이)

오늘날 많은 TV 논객들은 공중위생과 더 광범위한 환경 위기 사이에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제너의 인식을 전혀 공유하지 않는다. 우파들이 중국의 수산시장을 희생양 삼아 외국인 혐오에 의존한다면, 좌파는 엉망인 정부 대응과 <모든 이에게 의료보험(Medicare for All)>*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고 드물게는 공장식 축산을 비판하기도 한다. 이런 논쟁에서 너무나 자주 인수공통전염병은 피할 수 없는 사건이며 그 원인에 대해 신경 쓸 필요 없다고 가정된다.

(* 현재 미국에서 제한적으로 실시되고 있는 의료보험의 전국민 확대를 주장하는 슬로건으로 버니 샌더스의 선거 구호이기도 했다. ― 옮긴이)

당장 다루어야 할 정말 시급한 문제들이 있지만, 사스코로나바이러스2형의 출현 원인을 폭넓게 이해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환경 위기를 전체적으로 고찰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멸종에서 기후변화에 이르기까지 환경 위기의 모든 면면은 더 많은 질병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인류세”와 같은 개념을 유행처럼 쓰면서도 자연과학과 좌파의 관계는 여전히 소원하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까지 과학자와 사회주의자가 맺었던 긴밀한 관계를 떠올리면 이런 분리상태는 유난히 불편하다. 지금 과학의 발전상황을 따라가 본다면, 생물권의 환경 악화로 말미암아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사회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 곧 명백해질 것이며, 여기서는 식량 및 에너지 정치학이 주변이 아닌 핵심에 놓일 것이다.

새로운 석기시대

전염병 학자들은 전염병의 역사를 크게 세 시기로 구분한다. 첫 번째 시기는 만 년 전 신석기 농경사회의 시작에서 비롯한다. 사육되는 동물들과 인간의 밀접한 접촉은 수렵채취 사회에서는 불가능한 빈도로 종과 종 사이를 뛰어넘어 새로운 질병이 전파될 조건을 창출했다. 두 번째는 1850년대에서 1970년대까지 과학의 진보가 급속히 벌어진 짧은 근대의 시기이다. 제너가 시작한 과학적 전통 속에서 활동한 전염병 학자 루돌프 피로흐*는 “인수공통전염병”이라는 용어를 만들고 인간과 가축의 보건을 하나의 의학으로, 즉 요즘 부르는 말로 “지구 의학(planetary medicine)“원헬스(one-health)”*로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세기 의학의 발전은 수백만의 생명을 구한 새로운 백신과 기적의 항생제를 낳았다. 그러나 근대성은 지속되지 않았다. 동물로부터 감염되는 세 번째 시기가 1980년대에 시작됐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이 암흑기의 특징은 새로운 질병의 전례 없는 출현이다.

(* 루돌프 피로흐(Rudolf Virchow, 1821~1902)는 독일의 의사, 병리학자, 생물학자, 고고학자로 현대 병리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 옮긴이)
(* 지구의학 혹은 지구보건은 인류 문명과 인간이 살고있는 장소인 지구에 관계된 보건 문제를 통합적으로 바라보아야 할 필요성에 의해 제기된 용어이다. 인간과 지구 및 환경의 상호작용 및 여기서 발생하는 여러 보건 문제들을 주 영역으로 삼는다. 원헬스는 사람, 동물, 생태계 사이의 연계를 통하여 모두에게 최적의 건강을 제공하기 위한 다학제적 접근을 의미한다. ― 옮긴이)

이 가장 최근의 시기가 탈근대성을 규정하는 힘들, 즉 세계화된 상품 사슬, 신자유주의의 지배, 대도시 천연자원의 고갈, 독점적인 다국적기업의 부상, 글로벌 북부에서 제조업의 쇠퇴와 글로벌 남부의 급속하지만 불균등한 발전 등과 동시에 일어난 것은 단지 우연이 아니다.

우한이나 서아프리카에서 일어나는 진기한 동물들의 국제적인 매매도 이런 경향과 따로 떼서 이해할 수 없다. 사스코로나바이러스2형은 원래 박쥐나 천산갑의 질병이 어떤 매개 동물에게 전파되고 그 속에서 재조합되어 인간에게 전염된 것일 가능성이 있다. 진기한 동물의 매매는 문제의 중심에 있는데, 인간과 야생동물만 아니라 자연에서 결코 만날 일 없는 다양한 종들과 밀접하게 접촉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가까운 1970년대만 해도 중국은 수천 년 된 지속 가능한 농업으로 유명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중국이 산업화된 육류중심의 식량 체계를 도입한 1990년대에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했다. 소농들은 공장식 축산과 경쟁할 수 없었다. 그래서 중국 정부는 소농들이 야생동물 매매를 시작하게끔 장려했다. 그 결과 2003년에는 코로나바이러스가 박쥐와 사향고양이를 거쳐 인간에게 전염된 사스의 창궐을 겪었는데도 이는 계속되었다.

시장 세력과 국가 정책으로 인해 가난한 사람들이 절망적인 상황으로 내몰리는, 그래서 지역 생태계가 빠르게 불안정해지는 비슷한 이야기들이 전 세계에서 펼쳐지고 있다. 유럽 어선들이 서아프리카 해안 어장을 침범하자, 지역주민들은 값싸게 단백질을 얻기 위해 “야생동물 고기”로 눈을 돌렸다. 이런 초국가적인 불평등한 식량 체계들은 척추동물 종들이 보통 때보다 천 배 이상 빨리 사라지는 대량 멸종뿐만 아니라 에볼라나 에이즈 바이러스와 같은 새로운 인수공통전염병의 원인이 되었다. 광산, 석유, 목재 회사들의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건설된 도로들은 사냥꾼들이 전에 접근할 수 없었던 삼림 지역에 손을 뻗칠 수 있게 해주었고, 사람들이 야생동물들과 밀접한 접촉을 하게 만들었다. 콩고 분지에서만 매년 5억 마리 이상의 동물들이 잡혀서 보통 광부들의 식량으로 사용된다. 물론 야생동물 거래는 글로벌 북부에서도 이루어진다. “생태관광객 (ecotourist)”*은 여행하면서 영장류들에게 홍역, 소아마비, 결핵을 퍼뜨린다. 사육사와 연구실 노동자들은 시미안 포아미 바이러스(simian foamy virus)*를 보유할 가능성이 과도하게 높다. 희귀 반려동물 거래는 웨스트나일 바이러스*가 북미로 들어오는 경로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은데, 북미에서 그 바이러스는 토종 조류에 큰 피해를 주었고 2,300명 이상의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

(* 생태관광은 생태주의와 관광을 합성시켜 만들어낸 말로 자연환경과의 조화를 꾀하고 자연보호에 대해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여행 문화를 만들어내려는 움직임으로, 보통 외부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은 보호지역 또는 소규모 지역을 생태적으로 책임 있게 여행하는 것을 말한다. ― 옮긴이)
(* 원숭이 및 다양한 영장류들이 널리 가지고 있는 바이러스이다. ― 옮긴이)
(* 1938년 우간다의 웨스트 나일 지역에서 처음 발견된 바이러스이다. 말이나 까마귀, 참새 등 동물이나 조류 등을 통해서도 감염되지만, 주로 조류의 피를 빤 모기에 의해 감염된다. 감염자의 대부분은 가벼운 감기 증상에 그치지만 노약자나 면역체계가 약한 사람에게 감염될 경우 치명적인 뇌염으로 발전할 수 있다. 1999~2003년까지 미국에 크게 유행하여 4000여 명이 감염되고 300여 명이 사망하여 미국 전역이 웨스트 나일 바이러스 공포에 휩싸였다. ― 옮긴이)

희귀 동물 거래에 대한 협소한 비판은 산업형 농업에 의해 피폐해진 계급, 즉 전 세계 소농의 운명과 그것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무시한다. 야생동물 고기의 경제학을 대충 훑어만 봐도 야생동물을 보호하려면 공장식 농장도 없애야만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는 더이상 값싼 고기를 먹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사회주의자들이 지구 보건(planetary health)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제일 중요한 통찰은 아마도 새로운 인수공통전염병의 도전이 더 광범위한 환경 위기와 분리될 수 없다는 점일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의 단일한 환경 위기가 존재한다. 기후변화, 도시 팽창, 대량 멸종, 비료 유출, 비전염성 질병, 전염병 등으로 그것을 개별적인 문제들로 인위적으로 나누는 것은 실패한 상상력이다.

이들 각 현상의 배후에 있는 과학은 복잡지만, 전반적인 메시지는 간명하다. 인류가 자연에 더 적은 공간을 남길수록, 새롭고 치명적인 인수공통전염병을 비롯한 더 많은 환경 문제들이 발생하리라는 것이다. “인류세”*라는 이야기도 이 문제의 규모를 요약하는 한 가지 방법이다. 하지만 우리가 새로운 지질학적 시대로 진입한 이유를 이해하기 위한 분석적 개념들이 필요한 곳에서 그것은 지나치게 서술적인 이야기이다. 좌파가 유용하게 개입할 수 있는 영역은 과학자들과 더 넓은 사회에 그 모든 것이 환경 위기라는 하나의 문제로 귀결된다는 프레임을 구성할 수 있는 개념들을 제공하는 것이다. “인류세”에 관하여 말하기보다 우리는 “자연의 인간화”라는 오래된 마르크스주의자의 해묵은 이야기를 꺼내올 수 있다.

(* 지구 역사에서 인류로 인한 지구온난화 및 생태계 침범을 특징으로 하는 새로운 지질시대가 시작되었다는 개념으로, 대개 산업혁명 또는 2차 대전 이후의 시대로 제기되고 있다. 노벨상 수상자인 네덜란드 화학자 파울 크루첸이 2001년 처음 제기한 이래, 논란에도 불구하고 널리 사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자본세”라는 용어로 이를 대체해야 한다는 주장도 좌파에서 나오고 있다. ― 옮긴이)

 

세계정신(World Spirit)과 숲의 정령(Wood Sprites)

“자연의 인간화”는 헤겔에서 기원한 개념으로, 그는 자연으로부터 인간의 소외가 세계역사의 핵심 문제라고 생각했다. 노동은 자연에 인간 의식을 불어넣으면서 자연과 인간을 화해시키는 과정으로 이해되었다. 인간은 동물처럼 자연에서 직접 식량을 취하기보다는 자연의 흐름을 이끄는 도구를 사용하여 농작물과 가축을 생산한다. (과도한 단순화라는 점을 인정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헤겔의 논리를 확장해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에서 말하는 것과 비슷하게 자연의 인간화의 많은 부분이 “토지 이용 변화”의 역사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 IPCC는 기후변화와 관련된 전 지구적 위험을 평가하고 국제적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세계기상기구(WMO)와 유엔환경계획(UNEP)이 공동으로 설립한 유엔 산하 국제 협의체이다. 2019년 채택한 ‘기후변화와 토지 특별보고서’는 토지 이용의 변화와 기후변화의 상관관계를 밝혔다. ― 옮긴이)

카를 마르크스는 헤겔의 개념을 사용하여, 그 과정을 인간 본성(즉, 우리의 “유적 존재”)의 표현으로 인식했다. 하지만 헤겔과 달리 마르크스는 자본의 무의식과 인간의 의식 간의 분리로 인하여 자본주의 아래에서 자연의 인간화가 왜곡되었음을 감지했다. 마르크스가 볼 때, 자본은 오로지 자기 확장만을 추구했다. 자본가 개인은 “인격화된 자본”이었다. 마르크스가 말하기를, 그는 “의지와 의식을 부여”받았지만 그의 자유는 자본 축적이라는 단 한 가지 목표의 달성을 위해 제한되고, 눌러진다. 우리는 오늘날에도 이를 목격한다. 예를 들어, 한 회사의 CEO는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일지 모른다. 하지만 만일 그가 현행 이윤율을 맞추지 못한다면 회사에 타격을 감수하면서 값비싼 환경 친화 기술에 투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마르크스가 수정한 자연의 인간화 개념은 왜 사회가 자신이 벼랑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진로를 바꿀 수 없는지, 왜 예정된 화석 연료 발굴이 파리 협정의 제한을 크게 초과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해준다. 정치인들은 환경 문제에 대해 한 말씀 하거나 나아가 협정으로 문서화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을 땅속에 그대로 두는 것(leaving it in the ground)”*은 현재 경제 체제 내에서 불합리한 일이다.

(“그것을 땅속에 그대로 둬라(leaving it in the ground)”는 기후변화의 원인이 되는 화석 연료를 더이상 채굴하지 말고, 화석 연료 없이 살아가자는 생태주의자들의 슬로건이다. ― 옮긴이)

하나의 개념으로서 “자연의 인간화”는 “인류세”라는 개념보다 더 유용하다. 왜냐하면, 이 개념은 자본주의는 다른 역사 시대와 달리 근본적으로 자연을 재조직하는 기획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 개념은 자본은 자신이 생물권을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무감각한 힘이기에 자본주의가 결국은 재앙을 초래하리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렇다고 할 때, 이런 과정에 직면하여 자연이 기능하는데 필요한 공간을 자연에 부여하는 동시에 경제에 대한 의식적인 통제가 필요하다.

사회주의자로서 우리는 가능한 한 어디에서나 자연의 자본화에 저항해야 한다. 예컨대, 목장주들이 아마존 열대 우림을 불태우는 일이나, 비전통 석유(nonconventional oil)* 운반을 위해 캐나다에 새로운 송유관을 만드는 일에 우리는 저항해야 한다. 우리는 또한 사회주의적인 자연의 인간화, 즉 좌파의 목적을 위해서 자연을 지배하려는 의지를 경계해야 한다. 자연의 통제라는 프로메테우스의 환상은 좌파에게, 특히 “완전 자동화 럭셔리 코뮤니즘(fully automated luxury communism)”*의 지지자들에게 여전히 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인공 고기와 생태 복원을 지지하는 애런 바스타니는 이런 경향 내에서 부분적인 예외라 할 수 있다.)

(* 비전통 석유는 전통적인 시추 방식이 아니라 새로운 기술로 얻어지는 오일샌드, 초중질유, 가스액화연료, 석탄액화연료, 오일셰일 등의 석유를 가리킨다)
(* “완전자동화된 화려한 공산주의” 등으로 번역되는데, 최근 실리콘 밸리의 기술 엘리트들을 중심으로 등장한 경향이다. 이들은 인공지능과 로봇, IT 등 자본주의에서 고도로 발전한 기술을 바탕으로 모든 사람이 고급스러운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유토피아가 도래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영국의 정치 평론가 애런 바스타니가 2018년 동명의 책을 썼다. ― 옮긴이)

사회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자랑스러운 비판 능력과 과학적 지성을 저녁 식탁에 적용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분명 마르크스는 환경론자가 아니었다. 따라서 우리는 사회주의의 가능성을 상상하기 위해 가끔 마르크스에 반대하는 생각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역사란 농업의 탄생과 함께 시작됐다는 마르크스의 말은 옮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전염병이 농업의 쌍둥이로 태어났다는 사실은 간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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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Tragedy)과 결핵(Tuberculosis)의 탄생

과학자들은 대다수의, 어쩌면 모든 인간 병원균이 인류의 시작부터가 아니라 비교적 최근의 과거에서 비롯한 본질적으로 인수공통전염병이라고 생각한다. 홍역은 아마도 7,000년 전에 소의 질병인 우역(牛疫)에서 진화했을 것이다. 독감은 약 4,500년 전에 물새의 가축화로 시작됐을 수 있다. 제너의 전문분야인 천연두는 아마도 4,000년 전 동아프리카에서 모래쥐의 바이러스가 새롭게 길들인 낙타에게 전염되고 그것이 인간에게 전염되면서 생겨났을 것이다. 신대륙의 경우, 농업은 널리 행해졌지만 길들인 동물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 토착민들이 상대적으로 질병 없이 살았던 이유였다. 그러나 가축 사육은 유럽 침략자들에게 전염병에 대한 내성을 주었고, 식민지 건설과 함께 토착민들은 홍역, 발진티푸스, 결핵, 천연두에 빠르게 노출되었다. 신대륙의 인구는 1492년에 5천 만에서 1억 명에 달했지만, 다음 몇 세기 동안 90%나 떨어졌는데, 대부분 구대륙에서 온 인수공통전염병 때문이었다.

한동안은 새로운 약들이 결국 병원균을 억누를 것 같았다. 꼭 복지국가가 자본주의를 길들인 것처럼 말이다. 1972년, 전염병 관련 교과서의 필자들은 “전염병의 미래에 대한 가장 유력한 예측은 전염병이 매우 완화되리라는 것이다”라고 믿었다. 1975년 예일대 의대 학장은 “새로운 질병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예측했다.

불과 1년 뒤 에볼라 바이러스가 발견되었다. 얼마 뒤, 이 새로운 인수공통전염병에 대한 최초의 권위 있는 개론서의 편집자는 이렇게 경고했다. “인간이 만든 환경변화의 규모가 클수록, 더 커지는 것은 옛것이든 새것이든, 인수공통전염병의 출현 확률임이 틀림없다.” 에이즈 바이러스는 그 문제를 더욱 긴급하게 만들었다. 1990년대가 되자 “감염성 전염병” 분야는 “단지 진기한 것”에서 광범위한 학과로 변화했다. 2005년 H5N1 조류독감 공포 이후, 미국 정부는 프리딕트(PREDICT) 프로그램*을 시작했는데, 에볼라와 코로나바이러스의 새로운 변종들을 포함해서, 10년 동안 거의 천 개의 새로운 바이러스를 발견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 이 프로그램을 종료시켰다.

(* 미국 국제개발청에 의한 전염병 조사 프로그램으로 기금이 소진된 2019년 9월 말에 현장 작업이 중단되고, 2020년 3월 트럼프 정부에 의해 종료되었다. ― 옮긴이)

어떤 측면에서든 자연의 인간화는 과학자들이 “병원체 오염”이라고 부르는 것, 즉 다른 종의 동물들 사이에서 질병의 확산을 불러올 것이다. 라임병과 웨스트나일열 같은 질병이 급증한 것은 생물 다양성이 쇠퇴하며 미국흰발붉은쥐나 개똥지빠귀 같은 몇몇 매개 종들이 과도하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삼림파괴와 기후변화가 모기의 서식지를 확장해서 뎅기, 지카, 말라리아 및 여타 질병들이 더 흔해졌다. 현재 새로운 질병의 발생은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에게도 문제가 되고 있다. 새로운 산호 질병은 적조 현상과 기후변화와 연관되어 있다. 고양이는 돌고래와 흰돌고래(beluga)에게 톡소플라스마증을 일으키고 있다.

산업화된 축산은 우리를 공중 보건의 석기시대로 되돌리는데 가장 많은 일을 해왔다. 심지어 남극 황제펭귄도 이 획기적인 변화를 피할 수 없었다. 이 펭귄들은 지금 전염성 F낭병*에 걸려있는데, 이 병은 1980년대에 미국 동부 연안에 있는 대형 양계 공장들 내부에서 출현한 질병이다. 약 40억 헥타르의 광활한 땅에서 이루어지는 축산업은 전 세계에서 거주 가능한 지표면의 40%를 포괄하고 있으며, 인류와 자연의 가장 큰 접점이 되기에 새로운 질병의 주된 관문이다.

(* 주로 어린 닭에서 발생하는 급성 전염성질병으로 면역조직, 특히 F낭에 1차적으로 감염되어 면역기관 이상을 일으키는 질병. ― 옮긴이)

축산업도 질적으로 변했다. 자본은 건강을 대가로 식량 생산의 효율성을 증가시키기 위해 엄청난 압력을 유발한다. 마르크스는 “양의 골격을 그것의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으로 축소시켰다”*며 18세기의 유명한 자본주의적 사육업자 로버트 베이크웰을 비판하였다. 베이크웰은 실제로 동물들의 살 부위를 늘리기 위해서 뼈를 적게 갖도록 동물을 길렀다. 마르크스는 자신의 많은 아류들과 달리 자본주의의 환경적 측면을 분석하기 위한 별도의 이론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본주의의 맹목적인 시선은 동물과 기계의 차이를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 출처는 <자본론> 2권 12장 “노동주기” ― 옮긴이)

현대의 베이크웰들은 면역체계의 약화를 감수하고라도 동물의 유전적인 특성을 조작해서 알을 더 많이 낳거나 가슴살이 더 많은 특성을 촉진하려 한다. 기업들은 질병 발생에 취약한 과밀 시설에서 유전적으로 유사한 동물들을 ― 심지어 복제 동물들까지 ― 기르고 있다. 만연한 항생제 사용은 질병을 막는데 (그리고 동물의 성장률을 촉진하는데)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전 세계 병원에서 흔히 볼 수 있게 된 살을 먹는 박테리아인 MRSA와 같은 “슈퍼버그*”를 만들어내는 대가를 치렀다. 요로감염 같은 흔한 세균성 질병 역시 10년 전만 해도 효과가 있었을 치료에 저항력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매년 약 35,000명의 미국인들이 항생제 내성균의 감염으로 죽는다. 미국 슈퍼마켓에서 판매되는 폭찹(pork chops, 돼지갈비)의 71%에 항생제 내성균이 들어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칠면조 다짐육의 비율은 79%로 훨씬 더 높다.

(* MRSA는 메타실린 내성 황색포도상구균을 가리키는 말로, 항생제에 내성을 가지게 된 세균이다. 슈퍼버그는 이처럼 항생제로 쉽게 치료되지 않는 박테리아를 말한다. ― 옮긴이)

1998년 말레이시아의 한 마을에서 처음 발견된 니파 바이러스는 환경 위기의 다양한 가닥들이 어떻게 서로 결합하여 전염병을 만들어내는지를 잘 드러낸다. 이윤을 늘리기 위해서 농부들은 나무에 거름을 쉽게 주기 위해 돼지 축사 옆에 망고 과수원을 만들었다. 화전 농업으로 인한 삼림파괴는 과일박쥐를 원래의 서식지에서 몰아냈다. 박쥐들은 새로 심은 나무들에 자리 잡았고, 여기서 돼지들을 거쳐 사람들에게 병을 전염시킬 수 있었다. 박쥐들도 전염성이 강한 질병에 더 취약해졌다. 서식지가 파괴되어 박쥐들의 집단이 뿔뿔이 흩어지면서 그런 병원체군(群)에 노출되는 기회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이전에 박쥐에 무해한 바이러스였던 것이 돼지와 사람에게 심각한 신경계 문제를 일으켰다. 이 바이러스로 말레이시아에서는 감염자의 대략 3분의 1이 사망했지만, 이후 남아시아에서 유행했을 때는 치사율이 70%에 이르렀다. 바이러스의 확산은 엄격한 격리와 수백만 마리의 돼지를 도살한 후에야 저지되었다. 그 나라의 가장 큰 돼지 사업체에서 발병이 시작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렌틸콩을 해방하라

지구 보건 분야를 연구하는 전염병 학자들은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최근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토지 이용의 변화야말로 “야생동물, 가축, 인간의 신종 감염병(EID: emerging infectious disease)의 가장 중요한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 구체적으로는 “육류와 육가공품에 대한 수요 증가 때문에 전례 없는 인간과 동물 간의 접촉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해결책에는 “인위적인 개변 활동(anthropogenic activity)을 줄여서 야생 생물의 다양성이 풍부한 지역을 보존하는 것”이 포함되어야 한다.

미국 공중 보건 학회는 공장식 축산업의 중지를 요구하고 있다. 2003년 사스 발병 이후, 이 기관은 학회지에 “인간이 동물을 대하는 방식”의 변화를 촉구하는 논설을 실었다. 그들은 “가장 근본적으로는 육식을 중단하거나,” 공중 보건의 기본적인 조치로, “최소한 육식의 양을 급진적으로 제한할 것”을 제안했다. “이런 변화를 적절하게 채택하거나 도입하면, 크게 우려되는 독감의 대유행 가능성을 이제라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지금 세계는 운이 좋은 편이다. 우리의 생명을 유지해주는 식량 공급망이 아직 까지는 손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후변화의 시대에 자연재해들이 공손하게 차례를 지키며 일어나리라는 보장은 전혀 없다. 남아시아에서 대형 홍수가 발생할 때 수인성* 인수공통전염병이 퍼지고, 동시에 전 세계의 곡창 지대가 가뭄으로 말라가는 상황을 상상해보자. 이러한 규모의 대재앙이 닥칠 확률은 대기 중으로 이산화탄소 분자가 하나씩 더 들어올 때마다, 동물에서 인간으로 미생물이 하나씩 더 옮겨 올 때마다, 해수면이 1밀리미터씩 더 상승할 때마다 높아지고 있다. 그리고 이는 엄청난 고통으로 이어질 것이다.

(* 물을 통해 전염되는 병을 말한다. ― 옮긴이)

대량 멸종을 막고, 기후변화를 완화 시키면서, 미래의 팬데믹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우리는 식량 시스템을 개혁하고 육류 생산을 지양하는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 서른일곱 명의 저명한 공중보건학자와 환경과학자들은 굴지의 의학 학술지를 대표해 작성한 EAT-란셋* 보고서에서 야채, 과일, 건강에 좋은 곡물, 식물성 단백질의 섭취를 획기적으로 늘리고 육류와 유제품 섭취는 현격히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 영양학과 농업, 환경 부문의 16개국 37명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식품·지구·건강에 관한 EAT-란셋 위원회(The EAT-Lancet Commission on Food, Planet, Health)’는 2019년 생태계 친화적 식단을 구성해서 세계적인 의학저널 란셋<Lancet>에 발표했다. ― 옮긴이)

그렇게 육류 섭취를 줄이는 것은 주로 육식 위주 식생활을 하는 선진국들의 부유층들이 될 것이다. 이들은 가난한 나라의 평균보다 두세 배나 많은 고기를 먹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우리의 정치적 시야는 거의 모든 사람들을 위해 채식 위주의 식단을 상상해야만 한다. 아마존 열대 우림처럼 지구상에서 가장 다양한 생물이 사는 곳들에서 더 많은 방목지를 만들기 위해 삼림파괴를 자행해야 한다면, 그것은 지속 할 수 없는 식단이다. 대부분의 사회가 Eat-란셋 식단을 채택할 수 있다면, 연간 약 1,100만 명의 사망자를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영양실조를 피하면서, 당뇨병이나 심장병과 같은 주요 비전염성 질병은 최소화될 것이다. 육류를 포기하고 인간의 손길이 닿은 지구상 방대한 지역들 — 논란이 많은 환경보호론자 에드워드 윌슨*이 제안하는 바로는 아마도 지구의 절반 — 의 생태를 복원해내는 것은 사회주의 의제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 에드워드 윌슨은 개미 연구로 유명한 세계적인 생물학자이며 여전히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사회생물학의 창시자이다. 2016년 <세계의 절반>이라는 책에서 세계의 절반을 자연과 생명에게 양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옮긴이)

미래의 전염병에 대처하는데 백신, 항생제, 항바이러스제에 의존하는 것은 우리의 탄소기반 사회를 기후변화에서 구하기 위해 탄소 포집(carbon capture)이나 지구공학(geoengineering)*에 의존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프리딕트(PREDICT) 프로그램은 현 정권의 방해가 없었다고 해도 결코 새로운 전염병의 발발을 전부 다 포착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자본주의는 자신이 만들어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 거대 제약회사는 백신과 항바이러스제에 많은 투자를 하지 않는다. 군침을 흘릴만한 수익은 당뇨병과 발기부전 같은 포식병(diseases of affluence)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염려스러운 것은 자금이 풍부한 분야에서도 성과를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이다. 3천2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에이즈 바이러스의 대유행은 백신이 모든 질병을 해결하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2003년 사스 사태 이후, 세계보건기구는 “현대 과학은 나름의 현대적인 역할이 있지만, 가장 현대적인 기술 수단들은 사스를 통제하는 데 전혀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했다 … 사스를 통제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19세기의 공중 보건 전략인 접촉 추적, 봉쇄, 격리였다”는 보고를 받았다. 사회주의자인 우리는 구조적으로 생각해야 하며, 일시적 해결책과 기술적인 “해답”에 회의적이어야 한다. 특히 현대 의학의 효능이 쇠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대신 문제의 근본을 바로 들여다보아야 한다.

(* 탄소포집은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모으는 기술로, 이를 통해 대기에서 분리한 이산화탄소를 지하에 매장하여 기후변화를 저지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구공학은 공학 기술을 통해 지구의 환경을 대규모로 변화시켜 기후변화를 저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 옮긴이)
(* 포식병이란 심장병, 당뇨병, 골다공증, 비만 등 과도한 음식 및 영양 섭취로 인해 주로 선진국 국민들 에게 생기는 질환들을 가리킨다. ― 옮긴이)

자연의 인간화가 인류와 자연의 조화로 귀결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양자 모두의 파멸로 이어졌음을 명확히 해야 한다. 우리는 인간의 의식의 한계를 의식해야 한다. 즉 우리의 평안과 행복이 우리가 완전히 이해할 수 없을 복잡한 자연 시스템에 묶여 있다는 사실을 의식해야 한다. 자연과 사회를 이끄는 시장의 무의식 대신, 좌파는 의식적으로 인간 사회를 관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자연의 상당 부분은 겸허하게 자연 자체의 의지에 맡겨 두어야 한다. 이는 모종의 신비주의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이런 혼란에 빠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실제적인 분석 때문이다.

지질학적 규모로 건설된 새로운 사회주의는 과학자들이 자신의 힘만으로 할 수 없는 일을 달성하도록 도울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팬데믹과 기후변화에 어떻게 똑같은 유독한 경제적 힘들이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사회주의자들은 세계가 어떻게 망했는지 먼저 이해하지 않고서는 세계를 다시 건설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이해는 과학을 공부하는 것에서뿐만 아니라, 반성을 통한 비판에서도 생겨난다. 제너가 했을 법한 말을 하자면, 육류, 가죽, 애완동물, 동물 실험을 거친 제품 등과 같은 좌파의 “호화로움(splendour)에 대한 사랑”과 “호사스러움(luxury)에 대한 탐닉”은 위험한 자연의 파멸에 자신이 공모하고 있음을 보지 못하게 한다.

 

[번역] 기후위기와 코로나19는 분리할 수 없다.”에 대한 답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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